다시, 거울 앞에서

다시, 거울 앞에서

나는 23개월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45세 늦둥이 아빠다. 나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시작하면 사람들은 으레 짐작한다. 내 삶을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은 당연히 아이일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아이와 만난 건 44세가 되어 서다. 남은 수명을 감안하더라도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의 인생이 더 길었다는 말이다.

인생의 쓴맛을 자각하고 그것을 고난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는 27세에 첫 직장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그 이전의 나는 집에서 용돈 받으면서 소비만 일삼던 한낱 한량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철없는 한량에게 만감이 교차하고 희비가 엇갈리는 첫 번째 고비는 단연 결혼이었다. 난생처음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쩔쩔맸던 인생 최대의 사건으로 추억한다. 그렇게 서서히 철이 들어가나 싶었다.

조상님이 도운 탓일까,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별 탈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하지만 결혼 8년차에 날벼락처럼 큰 수술을 받게 됐고, 그 후 7년만에 또 한 번의 어려운 수술을 견뎌야만 했다. 감당하기 힘든 연이은 시련이었다.

나름 세상을 긍정하고 아름답게 여기며 살아온 평온했던 멘탈이 심하게 흔들렸다. 두 번째 수술대에 올라 마취 가스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찰나에 간절하게 기도 하기도 했다.

“부디 온전히 눈 뜰 수 있게 해주세요.”

짧지만 두려움과 슬픔, 진심이 담긴 애달픈 호소였다.

자상함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수술 후 급격하게 빠진 체중과 나약해진 근육은 나를 예민하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했다. 사적인 모임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얼굴에 웃음기도 점점 사라져 갔다.

나를 다시 찾고 싶었다. 정확히는,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오던 즐거움과 여유가 충만했던 바로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강도 높은 체력 운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식욕도 늘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나이테가 쌓이듯 마른 몸에도 서서히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일상 생활에 활기가 생겼다.

기분좋게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날 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불현듯 떠올랐다.

7년 전, 첫 번째 수술대에 누웠을 때 아버지가 써준 ‘거울 앞에서’란 제목의 편지 한 통.

휴대폰에 항상 저장되어 있는 그 편지를 다시한번 꺼내 읽었다. 그 편지에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버지 본인의 이야기와 고백이 담겨 있었다.


[ 거울 앞에서 ]

가정에 소홀한 아버지를 보고 화가 난 13세 소년은 30대 중반의 건장한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무모한 행동을 한다.

결국 5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차마 글로 옮길 수 없는 무참한 폭행을 아버지로부터 당한다. 그 전에도, 후에도 누구에게서 그러한 가혹한 폭행을 당해 본 적이 없다. 폭행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로 인해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그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소년은 자라서 아들과 딸을 둔 아버지가 된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해질 수 밖에 없다. 아들에게는 자기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하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아들에게 보상해주고 싶고, 아버지에게 받아 보지 못한 사랑도 주고 싶어 했다. 아들은 티 없이 자랐고 대학 졸업 후 결혼하여 한 아내의 남편이 됐으며, 지금의 직장인 ㅇㅇㅇ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로 인해 늘 행복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위암 진단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한계 밖의 절망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왜 생겼을까. 자식 없는 것이 너무 좋다는 뜻일까?

아닐 것이다.

부모도 사람이다. 그래서 유한한 존재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하는 무한한 사랑을 갈망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부모는 자식의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그 마음의 고통이 오죽했으면 “무자식 상팔자”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겠는가.

내가 그랬다.

아들의 암 진단 소식의 충격과 두려움.

그리고 그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과 무력감의 고통 끝에서 ‘아! 차라리 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것인데…’ 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가정의 평온은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고, 화산재보다 무거운 어둠이 가족 모두의 마음을 짓눌렀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모가 받은 충격보다 당사자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면서 남몰래 울었다.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공포와 절망감과 무력감 때문에 서러워 울었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이 이러한데 왜 내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 했을까 하는 아픈 기억 때문에 울었다.

도무지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한다고 했던가. 폭풍이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난 평안하다.

또 모든 것에 감사하다.

수술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아들은 놀라울 정도로 건강해 보인다.

이 아들에게 감사하고, 아내와 며느리, 딸 모두에게 감사하다.

아들 부부와 딸이 어버이날 연휴라고 찾아왔다.

며느리가 권했다. 아들 회사에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모한다는데 아들에게 편지 한번 써 보시지 않겠느냐고.

그렇지 않아도 써보고 싶었던 차였다.

그런데 쓰다 보니 아들이 아닌 나에게 쓴 글이 되고 만 것 같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마음을 털어놓을 기회가 주어졌는데 말이다.

5월이 깊어가고 있다.

연녹색이 사라지고 청춘과도 같은 짙은 푸르름이 산과 들을 뒤덮고 있다.

생동감이 넘친다.

이 푸르름이 있기까지 황량한 겨울을 통과해야 했을 것이다.

어려움을 통과한 내 아들 용진이도 저 푸르름 같은 생명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욱 건강하고 활기 넘칠 것이다. 아울러 내 아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부모의 자녀가 저 푸르름처럼 건강하고 생동감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한참을 울었다.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만 했을 때, 부모님께 차마 알리지 못하고 망설였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마르고 수척해진 아들의 모습을 차마 직접 바라보지 못하고 거울을 통해서만 겨우 보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최근의 나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항암 치료와 운동과 일을 병행하고 있다. 육아는 덤이다.

늘 내 편인 아내와 아이, 편안한 친구들과 든든한 직장동료들. 내가 마음으로 의지하고 내게 살아갈 이유와 힘을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항상 나의 심장을 뛰게 하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한 가지 뚜렷한 목표가 있다.

다시, 거울 앞에섰을 때 훨씬 좋아진 나의 모습이 아버지에게 보여지는 것.

거울 앞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그 날을, 나는 오늘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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